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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나이 성폭행 남자친구 입양딸 이태원 가게 결혼관


배우/방송인 겸 요식업 사업가 홍석천은 한국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죠.

홍석천이 이번 주 방영되는 티비조선 '인생다큐-마이웨이'에 출연한다고 하네요.


그의 트레이드마크 민머리는 단순한 헤어스타일이라기보다 젊었을 때부터 탈모가 와서 아예 싹~ 밀어버렸다고 합니다.


2000년 9월 갑작스럽게 자신이 동성을 좋아하는 '게이'임을 커밍아웃하면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과연 게이, 더 정확하게는 동성애자가 무엇일까요?



홍석천 - "어떤 택시기사 분께서 저한테 "하리수씨처럼 성전환 수술을 하고 예쁘게 나오면 방송 출연도 많을텐데, 왜 그러냐"라고 질문을 한적이 있다. 그래서 그 택시 기사분께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남자로서 동성인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홍석천 - "반면에 "하리수씨의 경우는 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이 달라서 여성으로서 살고 싶은 경우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같은 성 소수자이긴 하지만, 이 둘간에 개념이 조금 다르다. 하지만 아직 그런 차이를 모르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다."


홍석천: "난 단 한 번도 여자가 되고 싶다거나 성전환 수술을 하고 싶은 생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내 성기가 얼마나 예쁜데. 그걸 왜 자르나?"



홍석천 프로필을 간략하게 보자면,

홍석천 본명이구요. 남양 홍씨 입니다. 1971년2월3일생으로 올해 나이 49세.

고향은 충청남도 청양군 출생입니다.

홍석천 키 174cm/67kg. 혈액형 B형. 종교는 개신교(장로회)입니다.

학력, 남대전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소속사, 포레스타엔터테인먼트

별명 - '석천이형', '탑게이', '매느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



홍석천 가족사항을 보자면, 1남3녀중 셋째로 태어났고, 슬하에 1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결혼도 안한 홍석천이 왠 자녀가 있냐구요?

누나가 이혼을 했는데 그 조카들을 홍석천이 입양했습니다.. 2018년에 "조카들이 주변의 소수자나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런 아이들로 자라주었다"며 감사해했고, "이제는 많이 자라 정말 자식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습니다.




홍석천 입양 딸 홍주은양은 작년 tvN 예능 "엄마 나왔어'에 출연하여 홍석천과의 재미난 일상을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방송에서 두 사람의 진솔한 대화 중에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었죠.



홍주은 - "스타킹 살짝 비치는 게 유행일 때가 있었어요"라며 "그때 그거 입고 나가다 삼촌(홍석천 씨)한테 걸린 거예요. (삼촌이) 갈아입으래요. 그래서 (스타킹을) 벗어서 주머니에 넣고 나와서 다시 입었어요. (삼촌이 보수적이에요)"

스튜디오에서 이를 지켜본 방송인 남희석이 "야 보수적이래"라며 "석천이 형이 보수적이라는 얘기를 내가 들어야 돼?"라며 황당해 했고,

이에 홍석천은 "우리 딸이니까 이해해. 스타킹이 비치더라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홍주은 - "(삼촌이) '내 딸은 안 된다'라는 게 살짝 있는 것 같다. 특히 화장 (을 많이 간섭한다)"



이날 방송에서 홍석천과 식사하던 홍주은은 홍석천에게 "건강 챙겨. 잘생긴 동생들한테 (운동) 코치 받아. 그분들 몸 장난 아니던데"라고 했는데요.

이에 홍석천은 "넌 그런 스타일 안 좋아하냐?"라고 물었고, 홍주은은 "(몸 근육질인) 그런 건 별로..."라고 했습니다.

이에 홍석천은 눈을 질끈 감으며 "아직 네가 남자를 몰라"라고 말해 동료 연예인들을 폭소케 했습니다. 특히 남희석은 "딸과 아빠의 대화(라고 보기에는)... 묘하다..."라고 표현 ㅎㅎ


홍석천 성폭행


홍석천은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는데요.

홍석천 - "제 고향이 시골이어서 학생 수도 적은데, 그중에서도 제가 특히 예쁘장하게 생겼어요. 글짓기도 잘했고, 그림도 잘 그렸고,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고, 공부도 잘해서 그 작은 동네에서 제가 많이 돋보였죠."

홍석천 - "사실 아버지는 시골분인데도 얼굴이 굉장히 예쁘세요. 전 아빠를 닮고 싶었는데 엄마를 닮아서 얼굴이 좀 큰 편이죠."



홍석천 -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저보다 한 살 많은 형한테 미묘한 감정을 느꼈어요. 교회를 같이 다녔는데, 그 형과 묘하게 많이 엮이더라고요. 하지만 어릴 때라 잘 모르고 그냥 마음으로만 좋아했죠."

홍석천 -"중학교 다닐 때는 밤에 힘 꽤나 쓰는 친구들 세 명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당시 제가 목소리랑 몸매도 야리야리하고 예쁘니까, 성적으로 한창 폭발하던 시기였던 그 친구들이 저를 대상으로 그걸 푼 거죠. 전 그 사건을 남들에게 이야기도 못하고 몇년동안 혼자서 고민했어요."

홍석천 - "나중에 그 친구들을 용서해줬어요. 사실 그렇게 과거를 용서하지 않으면, 제가 못 살 것 같거든요."

이 중학생 시절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홍석천은 JTBC 《박경림의 오! 해피데이》에 출연하여 가해자들은 지금까지도 사과는커녕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홍석천 스스로만 그들을 용서했다고 했습니다. 대인배 홍석천.



홍석천 군대


과거 예능 프로 '세바퀴'에서 홍석천은 '군대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선임'으로 꼽힌 적이 있는데요. 알아둘 점이 이 앙케트는 세바퀴 출연진들만을 대상으로 진행한 앙케트였다는 점.


홍석천 - "대학 진학할 때 부모님과 갈등이 있었어요. 부모님은 제가 법대를 가기를 원하셨지만, 전 연극영화과로 진학하고 싶었거든요. 결국 아버지와 밤새 얘기해서 허락을 받았어요."

홍석천 - "군대는 방위로 근무했어요. 단기사병으로 군복무를 했는데, 이등병 때부터 약하고 여리고 귀여운 콘셉트로 갔어요. 결국 선임들로부터 한대도 맞지 않을 수 있었죠."


홍석천이 현역이 아닌 방위로 군 복무를 하게 된 것은, 홍석천의 고향이 충남 청양군인데, 청양군에 거주하는 사람의 경우, 인구 감소로 인하여 1980년대 이후에 입영하는 사람은 방위로 복무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홍석천은 처음부터 연기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는데요.

1994년 《생방송 TV정보센터》 리포터가 되었으며, 1995년 KBS 대학개그제로 공식 데뷔, 드라마와 시트콤 등에 출연하였고, 방송 활동 외에도 연극, 뮤지컬에도 출연하였으며 1996년부터는 MBC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홍석천 - "과거에 연기자 시험을 무척 많이 봤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그래서 개그 쪽으로 방향을 바꿨죠. 그런데 저는 개그맨 세계에 적응을 잘 못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디어를 내서 사람들을 웃기는 게 스트레스였고요."

홍석천 - "결국 개그맨을 그만 두고 다른 방송국의 개그작가로 들어갔는데, 그것도 맞지 않아서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다시 무대로 돌아왔어요. 그때부터는 주로 한양대 최형인 교수님의 작품에 출연했어요."

홍석천 - "당시에 돈이 없어서 굉장히 고생했어요. 사실 지인들에게 빈대 붙어서 버틴 거죠."



이후 홍석천은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여성스러운 성격의 패션 디자이너 "쁘아송" 역할을 맡아 주가를 날렸고, 그 인기에 힘입어 다수의 방송에 출연하고 광고모델로도 활약했는데요. 2000년에는 '뽀뽀뽀' 진행자도 맡는 등 자기 나름의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방송인으로 꽤 성공하게 됩니다.


홍석천은 예능프로에 출연했을때 여성스러운 리액션 등 수다스러운 모습의 컨셉으로 밀고 있으나, 이는 친밀감을 주려는 의도이고 실제 오프라인에서는 만나면 과묵하고 상남자스러운 모습이라고 합니다. 특히 사업과 관련된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그리고 가끔씩 드라마에 나오는 노출 장면만 봐도 알듯이, 굉장한 근육질 몸매입니다.



2006년에 개봉한 《두뇌유희프로젝트 퍼즐》에서 주연급 조직폭력배 역할을 맡아 거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심지어 여자를 강간하는 역을 아주 리얼하게 소화해내기도 했습니다.

《푸른거탑》 시즌2 14화에서 새로 전입온 소대장 홍 중위로 열연하였는데, 성격은 말 그대로 "상남자", 입버릇은 "남자답게". 육군사관학교 수석졸업에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평소 방송에서 주로 보여줬던 섬세한 모습이 아닌 진짜 폭풍간지나는 상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홍석천은 한 대학 강연회에서 "중고등학교 때 내가 관계를 가진 남자 선배들이 300명은 넘을 것이다"라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후에 해명했는데 그 발언은 그저 농담이었고 기레기들이 이상하게 왜곡해 기사를 썼다고 합니다. 실제로 호모포비아들이 '동성애자들은 300명, 3000명의 섹스파트너가 있다.'는 식으로 동성애자들이 문란하게 성생활을 한다는 식으로 왜곡선동을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비꼬려고 발언한 것으로 보입니다.




홍석천 커밍아웃, 남자친구 고백


2000년 홍석천은 세간을 충격에 빠뜨리는 커밍아웃을 했는데요.

커밍아웃을 한 연예인 1호로 기록되었는데, 당시 홍석천의 커밍아웃에 대해 소수의 사람들은 그의 용기있는 행동에 격려를 보냈지만, 동성애에 무지하고 심지어 혐오스럽게 보는 것이 주류 시각이었던 한국 사회에서 그는 더 이상 TV에 나오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결국 몇달간 방송출연이 꽉 막히게 되었고 이후로도 방송에 간간히 나오기는 했지만 혐오의 대상이 된것은 마찬가지였죠.



홍석천 - "2000년대로 넘어가는 첫 해였였어요. 당시 Y2K 문제, 종말론, 사재기도 벌어질 정도로 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죠. 그런 상황에 저도 기대가 됐던 것 같아요. 후진 구시대는 갔다는 생각에..."

홍석천 -"사실 내가 그때까지 30년 세월 동안 내 정체성을 알아가면서 남들 눈치 보는 데 허비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서른 이후에는 내 주관적인 삶을 살고 싶었죠."

홍석천 - "또한 우리나라에는 저같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이런 성소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감춘 채 살아가고 있죠. 그래서 제가 대표로 이 문제를 건드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난 젊으니까 다 잃어도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홍석천 - "내가 커밍아웃을 하고 나니까 무척 많이 힘들었어요. 당시 집안에서 한달 내내 술만 마시고 담배를 피웠죠. 그러다가 문득 '어차피 내가 커밍아웃까지 했는데, 무서울게 뭐냐?'라는 생각에, 자주 다니던 게이 바에 갔어요. 그리고 거기서 남자친구를 만났는데, 제가 첫눈에 반했어요. 제가 힘들때 누구보다도 큰 힘이 되어 주죠."


홍석천: "또한 나의 위기를 극복시켜준 것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책이죠. 동성애자 정치인이었던 하비 밀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밀크'가 나에게 큰 영감을 줬고, 또 '고래바위'라는 책으로 큰 용기를 얻었어요."


2007년 홍석천 인터뷰 - "남자친구와 현재 4년을 사귀었다. 우리(동성애자)가 4년 사귄거면 스트레이트(이성애자)가 마치 40년을 사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현재 홍석천에게 남자친구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홍석천의 마리텔(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했던 김우주가 이러 발언을 했죠.

김우주 - "저는 홍석천의 남자친구가 아니에요. 홍석천 남친이 따로 있어요."


참고로 홍석천 남자친구의 이름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관계자들 사이에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홍석천 결혼관


홍석천 - "동성 결혼을 한 김조광수 형이 한양대 연극영화과 선배이고, 도한 내가 믿고 따르는 형이기도 하다. 그 형의 용기를 개인적으로 많이 응원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까지 내 인생에서 결혼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결혼은 너무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태원 레스토랑 사업, 홍석천 가게 식당


'커밍아웃'으로 인해 결국 방송 출연이 막힌 홍석천은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홍석천 - "2000년 커밍아웃을 한 후에 생계가 막막해졌어요. 모든 방송 출연이 전부다 스톱이 되었으니까요. 사실 1년 반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휴식이 3년을 넘어가니까, 점점 조급해졌어요. 모아 둔 돈도 떨어져 갔기에,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결국 2002년에 홍석천은 이태원(서울 용산)에 이탈리아 레스토랑 '아워플레이스'를 열게 됩니다.(현재는 '마이엑스'로 상호 변경


홍석천 - "당시 아워플레이스를 건물의 6~7층에 열었어요. 당시만해도 식당은 1층이나 2층에 열었기 때문에, 제 주변에서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하지만 전 왜 복잡한 1층에서 부대껴야 하나 싶었어요."



홍석천 - "그러다가 외국인들 사이에서 ‘적은 인원이 재미있고 알차게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내국인들은 제 가게를 처음 찾아서 저를 보고는 '게이바 아냐?'라고 하면서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죠."


그 후 이태원 지역에만 자신의 레스토랑을 연달아 차려 성공시키면서

(현재는 My Hong(아시아퓨전- 일본 요리+태국 요리), My Chi Chi's내 찌찌(아시아퓨전), My Thai(태국 요리), My Thai China(아시아퓨전-중국 요리+태국 요리), My X(와인바), My Chelsea(펍), My Noodle(면류), My Sweet(디저트 카페) 등 7개의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재벌", "이태원 지주"의 자리에 오른 홍석천은. 2015년 7월 토크쇼 <택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연 매출이 50~70억에 달한다고 합니다.



홍석천 레스토랑과 식당들은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150여미터 떨어져 있는 이태원 중심 상권에 몰려 있는데요.

홍석천이 처음 가게를 차렸던 2000년대 초반의 이태원동은 어둡고 지저분한 동네였고, 주로 외국인들만 찾는 동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사업이 성공하고 2005년부터 집중적으로 자신의 가게들을 늘려가면서 해밀턴 호텔 뒷골목이 그의 가게들로 가득 찼고, 그 분위기를 이어가듯 점점 개성 있는 레스토랑, 펍, 카페들이 늘어가면서 오늘날 "뜨는 동네"가 된 이태원이 있기까지 그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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