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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애 나이 이혼 재혼 남편 사별 딸 근황


1984년 KBS 제2회 개그콘테스트 대상을 차지하며 1980년대 코미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개그우먼 이경애! 이경애의 밝은 모습 뒤에 가려졌던 가슴 아픈 인생사와 함께 이경애가 평생 은인으로 생각한다는 송곡여자고등학교 연극반 시절 신현돈 선생님을 'TV는 사랑을 싣고'를 통해 찾아 나선다고 하네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KBS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스타가 되기까지 10년간 망우동 단칸방에 살며 학업보다 생계에 힘썼던 지난날. 14살부터 가장 노릇을 하며 형제들 뒷바라지를 해온 이경애가 5남매 중 홀로 대학에 가지 못하자 아프신 어머니는 마지막 소원으로 이경애가 대학에 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소원이자 자신의 평생 꿈이었던 대학 입학을 위해 1998년 35살 나이에 입시에 도전한 이경애. 원서 접수를 위해 찾은 모교 송곡여자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난 신현돈 선생님은 이경애에게 입시를 위한 문제집을 챙겨주며 ‘늦지 않았다’는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는데... 신현돈 선생님의 한마디가 평생 좌우명이 될 정도로 큰 힘을 얻은 이경애는 1999년 36살에 동덕여자대학교에 당당히 합격! 어머니의 한도 풀어드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유쾌하고 항상 웃음을 주는 개그우먼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이경애지만, 사실 그녀는 열네 살에 동생과 함께 수세미를 팔며 가장 노릇을 할 정도로 집안 가정 형편이 어러웠다고 합니다. 그때 생긴 오기로 힘든 시기를 버텨왔다고 하네요.



약주와 노름을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생활비를 벌어 여섯 식구 생계를 유지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집값이 70만 원 정도였는데 어머니가 장사해서 마련하신 집을 아버지가 노름으로 일년 만에 잃었다고 합니다.

이경애 - "어렸을 때 빚쟁이가 들이닥쳐 아빠 월급을 털어갔다. 집이 어려워지면서 어머니가 정신이상까지 생겼다. 자살기도를 5번이나 하셨다. 엄마가 너무 불쌍했다"



이경애의 언니는 한 인터뷰에서 "이경애는 어릴때부터 속이 깊었다"며 "엄마가 매를 들면 보통 도망가는데 이경애는 일부러 맞아줬다. 엄마가 자기를 때리면 스트레스가 풀릴 거라고 하더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내성적이고 여린 소녀였던 이경애는 가족들을 위해 개그우먼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경애는 1984년 제2회 KBS 개그콘테스트로 화려하게 데뷔했고, '유머일번지', '쇼비디오자키' 등에 출연 하면서 큰 인기를 얻으며 개그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전성기때 수상경력만 봐도 화려한데요.

1996 백상예술대상 연예상
1995 제22회 한국방송대상
1992 제28회 백상예술대상 TV 여자예능상
1984 제2회 KBS 개그콘테스트 대상



이경애 프로필을 간략하게 보자면,

이경애 본명이구요, 고향은 서울입니다.

1964년 11월 18일생으로 올해 나이 56세.

이경애 키 158cm. 학력 송곡여자고등학교.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과

가족사항으로 부모님은 아버지, 어머니 모두 별세하셨구요. 재혼 남편 김용선과 사별하였고, 슬하 자녀로 딸 김희서가 있습니다.


이경애는 전성기 때 여러 유행어를 남기면서 많은 CF를 찍었었습니다.
한 편당 3000만원의 광고료를 받았고 집안에서 가장 역할을 하며 부모님, 형제들을 지원했습니다.


이경애 이혼, 재혼 남편 김용선 사별


이경애는 남편 김용선을 만나기 전에 한번 이혼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경애 “나 나름대로 첫 번째 결혼이 행복하지 않아서 6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사람하고 아쉬움이 있을 때였다. 5년 간 울며 잠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지않나. 내가 안 좋게 끝나자 친한 사람들이 공격자가 됐다”



사실 확인도 없이 헛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에 사람이 싫어지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그 당시 유일하게 보호해준 사람은 ‘너 그런 말 하지 마. 네가 직접 봤어?’ 하면서 후배를 혼내줬던 선배 임하룡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경애는 재혼을 했는데요. 이경애 남편 김용선 나이는 14살 연상으로 1997년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이경애가 김용선이 앉아 있던 테이블에 합석을 하면서 인연이 맺어졌다고 하죠.

이경애처럼 김용선도 첫번째 결혼에 실패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날 무렵, 김용선의 간이 급속도로 안좋아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간경화로 간 이식을 받게 되었는데, 김용선의 큰아들로부터 무사히 간이식을 받게 되어 호전되었다고 하는데요. 김용선은 전처와의 사이에 3자녀가 있었는데, 자녀들 모두 이미 성인으로 성장한 뒤였기에, 이경애의 손에서 자라지는 않았죠.



이후 이경애와 김용선은 2002년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이경애는 임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임신 불능이었기 때문이었죠. 결국 이경애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시험관 아기로 인공수정을 결심하고 2번째 시도에서 딸 김희서를 얻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딸과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도 잠시... 이경애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잠깐 세웠는데, 뒤에서 오던 차가 졸음운전을 하다가 이경애를 그대로 받아버린 거죠. 

당시 이경애의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관절이 탈골되는 대형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인 김용선이었습니다. 아내인 이경애에 대한 걱정으로 며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결과, 간이 급속도로 나빠지게 되니까요.

결국 이경애는 재활치료를 포기하고 남편의 간병에 매달립니다. 남편의 건강은 차츰 호전되지만, 이경애는 몸 오른쪽 마비 증상을 겪습니다.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이경애는 본인과 남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경에는 개그맨 이경래의 부탁으로 송년회 행사장에 갔다가 감전을 당해서 몸이 공중으로 튀어오르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죠.


이경애 남편의 건강은 이경애의 극진한 간병 덕분에 다시 회복을 하게 되지만, 이후 차츰 간이 나빠졌고 2013년 신부전증으로 향년 64살의 나이로 사망을 하게 됩니다.



이경애는 사랑하는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이경애 본인은 50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인데 자신의 몸은 불편하고, 딸의 나이는 겨우 9살입니다.

딸이 스스로 건사를 하려면 앞으로 십년 이상 이경애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16년간이나 남편 병치레와 본인 병치레를 한다고 재산도 얼마 모으지 못했으니까요.

후에 이경애는 사랑하는 남편과 사별후 큰 슬픔에 빠져 50년 동안 마실 술을 몇 달간 더 많이 마셨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과거 나이트 사업으로 억대 빚까지 지게 되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 우울증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이경애 - "남편을 16년 간병했다. 하늘나라로 떠난 지 벌써 3년이 됐다. 아이가 없었으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와 벽을 보며 억지로 웃으며 버텼다"

이경애 - "긴 병간호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고 병간호하는 사람이 먼저 간다는 여러 말이 있다. 근데 16년이었다. 보호자가 떠난 건데 그 시절 하나하나 말로 할 수 없다"



이경애 - "아픔을 겪고 갖고 있던 돈, 나름대로 쌓았던 명예가 한 순간에 무너져 차비가 없어 걸어 다녔다. 차비를 빌려 다닐 수도 있었지만 사람 만나기가 싫었고 사람 만나기가 싫었다. 무너진 자신이 스스로 용납이 안 돼 대중교통도 못타고 걸어 다녔다"

이경애 - "이렇게 사느니 내 목숨 하나 끊을까 싶었다. 여러 번 시도도 했다. 당시 부모님이 살아계셨는데 사고 당했다고 말할까 싶었다"


이렇듯 이경애는 당시 극심한 생활고로 겨울철 세차장 아르바이트, 병원에서 시체 닦아주는 아르바이트까지 생계를 위해 닥치는대로 일을 해왔다고 합니다. 정말 힘든 일을 많이 겪어 온 이경애.



2005년에 얻은 늦둥이 딸 김희서양과 단둘이 살고 있는 이경애는, 딸 희서양이 어릴적부터 아토피 증상이 심해서 자연과 가까운 남양주집으로 이사해서 살고 있는데요. 딸 희서의 아토피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건강 때문이기도 하다고... 맹장염 수술, 그리고 갑상샘 항진증 투병으로 인해 공기 맑은 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 때문에 미안해서 한동안 술에 빠져 살았지만 다시금 일어서서 방송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인공수정으로 귀하게 얻은 이경애 딸 희서양은 외모도 자질도 이경애를 많이 닮은거 같습니다. 요리신동이라 불리울 정도로 요리실력이 뛰어나다고 하죠. 예능 '유자식 상팔자'에 함께 출연해서 일상속에서 티격태격하는 모녀지간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경애는 앞서 언급했듯 과거 사업실패로 억대 빚을 졌다가 현재는 억대 매출 사업가로 재기에 성공했는데요. 비만이 된 딸 희서를 위해 관심을 갖고 있던 어묵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아 2012년 어묵사업을 시작했는데, 2015년 억대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성공했습니다.



이경애는 어묵사업과 함께 떡볶이 전문 음식점 운영도 하고 있는데요.
방송프로에서 춘장, 우유, 콩가루, 생강가루, 우유와 함께 맛간장이 어우러진 독특한 떡볶이 레시피를 공개하기도 했었습니다.
엄마를 닮아 요리에 특출한 소질이 있는 이경애의 딸 김희서는 '아이엠셰프' 예선 심사에서 춘권을 이용한 떡볶이를 만들어 본선에 진출하기도 했었습니다.



이경애의 떡볶이집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인천 남동구 구월동 등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묵공장은 동생, 언니와 같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경애 근황을 보자면, 

찾아가는 시민아카데미 울산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긍정적인 마인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많이 다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경애는 영화배우로 전향하여 공포 스릴러 영화 '아이컨택'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연기를 했고, 단만극 드라마 '내이름은 트로트'에도 주연으로 캐스팅되었습니다. '열 두 번째의 노래' 영화에도 출연한다네요.

이전에도 코미디 영화 '밥풀떼기 형사와 쌍라이트', '칙칙이의 내일은 챔피언', '영자야 울지마라' 등에도 출연했었던 이경애는 이젠 본격적으로 영화배우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는 거 같아 보기 좋습니다.



지난 4월에는 이경애의 소속사 ‘에코휴먼이슈코리아’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이경애의 일본 진출 소식도 전했는데요.  "일본 도쿄에 위치한 매니지먼트사 ’그레이스‘ 와 손잡고 일본 진출에 나선다. 한인 교회 간증부터 강연 그리고 팬미팅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첫 해외 진출이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탄탄하게 준비해서 좋은 모습 보여 드리겠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누구보다 아픔이 있고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이경애가 앞으로는 좋은 활동으로 더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으며, 사랑하는 딸 희서양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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