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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숙 나이 결혼 이혼 남편 아들 노래


데뷔후 오랜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효녀 가수 현숙이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인생사를 고백한다고 하네요.


전북 김제시에서 태어난 현숙은, 학창시절에 동네 장기자랑에 참여해서 이런저런 물품을 상으로 받아왔는데 이에 맛들려서 아예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현숙 학력을 보면 중학교는 금성여중, 고등학교는 김제여고를 나왔는데, 중학생 시절 학생인 걸 속이려고 가발을 쓰고 노래자랑에 나갔다가 선생님에게 걸려서 큰일날 뻔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학교에 현재 현숙이 기증한 물품이 꽤 된다는 게 아이러니.



현숙 리즈, 젊은시절 모습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졸업하자마자 바로 서울로 상경해서 가수가 될 방법을 모색했던 현숙은, 후에 작곡가 임종수의 눈에 띄어서 가수가 되었습니다.


현숙 본명을 정현숙이구요. 본관 동래 정씨입니다.

1959년5월17일생으로 올해 61세.

현숙 키 160cm/50kg. 혈액형 AB형

현숙은 12남매의 대가족에서 11번째로 태어났습니다. 12남매였지만 6명이 사망해서 3남3녀중 다섯째.



1976년 <끓고 있네>란 곡으로 가수로 데뷔한 후, 1978년 <정답게 둘이서>, 1979년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 1980년 <정말로>, 1982년 <포장마차> 등을 히트치면서 4년 연속으로 10대 가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정말로>는 그녀의 매니저인 김상범이 작사해준 노래.



1995년에 <사랑하는 영자씨> 노래가 트로트계에서 대히트를 치는 바람에 비교적 낮은 연령층에게도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1997년에는 <요즘여자 요즘남자>로 히트를 쳤습니다. 

2002년에는 <오빠는 잘 있단다> 를 발표하여 대히트를 치며 지금까지도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기타 대표곡은 <물방울 넥타이> , <해피데이>, <내 인생에 박수>등등. 꾸준히 한 해마다 앨범을 내고 있는 중.




현숙은 안티가 없기로 소문난 연예인인데 그 이유는 현숙이 이름난 효녀였기 때문. 

현숙은 자신의 어머니가 죽을때까지 병수발을 혼자 도맡아왔고, 노인복지에 적극적으로 애쓰고 있으며 효녀 가수가 현숙의 수식어가 되었습니다. 무대 공연 시작시 인사말도 "안녕하세요~ 효녀 가수 현숙입니다"로 정착됐습니다.



여담이지만 현숙의 어머니(김순애)가 동래 정씨 종갓집 맏며느리라고 합니다. 동네가 온통 일가친척으로 집성촌이었다고.

고향인 전라북도 김제시 행사에 자주 모습을 보이며, 개런티를 받으면 지역사회에 기부를 해 사실상 노개런티로 행사를 뛴다고 합니다. 이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제 지평선 축제의 주요무대인 벽골제에 현숙 노래비가 세워졌습니다.



현숙 - "형제 자매가 많은 덕에 (성격이) 둥글게 둥글게, 모나지 않게 자란 것 같아요. 그래서 어디 가서도 사람들과 잘 친해졌죠."


현숙 - "아버지는 옆집이 어렵다고 하면 곡식을 가져다 주셨고, 또 어머니는 김치를 담그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어른들께 나눠 주셨어요. 저 역시 어머니 손을 잡고 동네 어른들을 함께 찾아다니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고요. 아마 지금의 성격은 그런 어린 시절에 만들어진 것 같아요."



현숙 - "어린 시절 제 특기는 음악과 체육, 수학이었어요. 김제 금성여중 배구부 선수로 뛰었고, 또한 조회 시간에는 단상에서 애국가 지휘를 맡기도 했어요. 운동회만 되면 체육선생님과 음악선생님 서로 날 데려가려고 싸웠어요."


현숙 - "중학교때 배구부에서 합숙훈련을 갔었는데, 거기서 군산 KBS가 주최하는 노래자랑 대회가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랑 둘이서 가발쓰고 나가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을 부르고 1등을 했어요. 그 이후부터 가수를 꿈꾸게 되었어요."


현숙 - "고등학교 졸업을 한 달 앞두고 서울행 기차를 탔어요. 그때 어머니가 돈 만원과 김치 한 포기, 쌀 한 말을 주셨죠. 지금 돌이켜하면 어떻게 그런 (대담한) 결정을 내렸나 모르겠어요. 형제자매가 많은 집안에서 자라서 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현숙 - "그러다가 유명 작곡가 김정택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놓고 선생님에게 눈물을 흘리며 밝고 경쾌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나온 노래가 바로 '정말로'였죠."

이 노래가 바로 '가슴이 찡할까요 정말로, 눈물이 핑돌까요 정말로'라 가사로 시작하는데, 기성 세대들은 대부분이 알 정도로 큰 히트를 치게 됩니다.




효녀 가수 현숙 결혼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숙의 노래는 더 이상 히트치지 못하고, 현숙 어머니와 아버지가 병을 앓게 되면서, 개인적인 어려움까지 겪게 됩니다.

이 당시 현숙이 부모님의 병수발을 드는 모습과 현숙 가족들이 다큐멘터리에 방영되면서, 현숙은 '효녀 가수'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또한 현숙은 이때문에 결혼 시기를 놓치게 됩니다.



현숙 - "효녀 가수라는 말이 정말 부끄러워요. 제 부모를 제가 모시는것 은 당연한 거고요. 간병인을 따로 두지 않은 건 엄마와 보내는 하루하루가 무척 소중했기 때문이에요."

현숙 - "게다가 그 모든 걸 저 혼자 다 한 것은 아니에요. 주중에는 언니와 형부가 모시고, 주말에는 오빠와 올케언니가 모셨고요. 게다가 올케 언니는 병간호를 위해 30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두셨어요. 그러니 저만 효녀 이야기를 듣는 것이 미안할 뿐이에요."

현숙 - "효녀 가수라는 타이틀, 저도 참 부담스러워요. 하지만 제가 듣고 싶다거나 듣기 싫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현숙 - "저는 매사에 항상 감사해요. 저라고 왜 지방 공연을 할때면 몸이 피곤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속으로 '난 지금 소풍간다'라고 생각해요."

현숙 - "목포에서 공연을 하면, 밤 11시에 끝나고 서울에는 새벽 3시에 도착해요.  그리고 피곤한 몸을 눕히는 그 순간이 참 행복하죠. 그 순간을 위해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것(일을 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현숙 - "제가 가수이다보니까 간혹 그런 분(저를 나쁘게 대하시는 분, 예를 들어서 안티)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분들은 그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다'라고 생각하고는 그냥 넘겨요. 또한 간혹 지갑을 잃어버리거나 어딘가에서 넘어져 다치거나 어떤 나쁜 일을 당해도 '그래도 건강을 잃은 것보다 이게 낫지 않나'라고 스스로를 위안해요."



현숙: "전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현재 생활이 좋아요. 제 노래가 항상 밝고 희망적인 것도 '가수는 자기 노래 따라간다'라는 속설 때문이에요. 정말 내숭이나 가식이 아니죠."


현숙: "저는 신나게 노래 부르고, 신나게 사람을 만나고, 또한 신나게 형제, 친구, 이웃사촌들과 즐기며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요. 본인에 대한 예의를 과분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죠."


이처럼 현숙은 실제 성격이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대인관계에 있어서 붙임성도 좋습니다.



현재까지 현숙은 결혼하지 않은 미혼입니다.

현숙 결혼 적령기였던 1990년대에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고, 또한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아팠기에 병수발을 들다가 결혼 시기를 놓친 것이죠.


현숙: "편찮으신 부모님 두 분을 모시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그래서 남들의 다섯 배나 되는 스케줄을 소화하며 일하느라 결혼할 시기를 놓쳤다."


하지만, 현숙은 독신주의자는 아니고 여전히 결혼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현숙 - "학창시절 선생님도 짝사랑해봤고 남들 하듯 (연애도) 다 해봤어요. 그렇지만 가슴 속에 담아두는 건 미래의 상대방(미래의 현숙 남편)을 위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전 아직 결혼도 안 했고, 또한 프라이버시도 있잖아요."


현숙 - "제가 좋아하는 김상희 선배님께서는 한 번도 남편에게 첫사랑 얘기를 안하셨대요. 여자로서 결혼할 때까지, 그리고 결혼한 뒤에도 늘 (남편을) 첫사랑하듯 살라고 하셨어요. 전 그 말을 가슴에 새겼어요."

현숙 - "앞으로 순리대로, 다가오는 대로 (결혼을) 하려고 해요. 만약 가야 할 운명이라면 가고, 이대로 살아야 한다면 살고요... 일부러 (결혼 및 남편을) 만들어내려고는 하지 않지만, 가정을 이뤄 보통사람처럼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늘 해요."


현숙 이상형, 현숙 아들?


현숙 - "돈은 많이 벌어오지 않더라도 아침마다 출근하는 성실한 남자가 이상형이에요. 또한 제가 언제든지 믿을 수 있는 성격 좋은 사람을 좋아해요."


현숙 - "연하는 자신이 없어요. 제가 좀 많이 소심하거든요. 제가 결코 특별한 남자를 찾는 건 아니에요. 그저 저를 사랑해주시는 어르신들이 제 걱정 안 할 만큼 평범하고 예쁘게 사는 게 중요하죠. 또한 형제자매 많은 집에 가서 시부모님 등도 밀어드리고 손잡고 여행도 가고 싶어요."


현숙은 현재까지 미혼인데, 자식은 있습니다. 바로 남동생의 아들(현숙 조카)를 양자로 들였기 때문이죠.


현숙 - "과거에 심하게 아팠다. 열이 39도까지 올라갔는데 혼자 병원에서 누워 있으며 '옆에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현숙 남동생 - "혼자 외로워할 누나(현숙) 생각에 어려운 결심을 했다.(내 막내아들을 누나의 양자로 보내겠다)."

현숙 남동생 와이프 - "아이한테 의견을 물어봤었다. (현숙의 양자로 간다는 것에 대하여) 알겠다고 하더라. 사실 좀 서운하기도 하지만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고모(현숙)랑 있는 거다."


현숙 - "세영이(현숙 조카)가 대학에 가고 성인이 되면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함께 있어야지 내가 세영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을 거 같더라.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결국 현숙은 조카를 양자로 받아들였지만, 조카가 아직 어린 나이임을 감안해서 곧바로 같이 살지는 않았습니다.


현숙 - "(남동생의) 열한 살짜리 막내아들을 제 호적에 양자로 입적시켰어요. 그래서 생일이면 같이 밥도 먹고 하죠. 또 아이를 위해서 주택부금도 들었어요. 요즘은 아들이 모은 돼지 저금통을 들고 은행에 같이 가서 저금하는 일이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요."


현숙 - "아이가 아직은 어리니까 제 집과 동생 집을 오가고 있어요. 고등학생 정도로 크면 같이 살려고요. 모든 것을 순리대로 살 거예요. 나중에 결혼해야 할 운명이라면 새로운 집안(미래의 현숙 시댁)과 우애 있게 살면 되고, 또 혼자 살 운명이라면 양자와 함께 오순도순 살면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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