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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숙 남편 이혼 아들 손녀 남해 카페 집


배우 박원숙의 인생사를 보면 참 기구하고 가련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듯 한데요.

한 남자와 두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고, 3번째 결혼한 남편과도 결국 결혼생활에 파경을 맞고 이혼했죠.

거기에 전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 아들마저 불의의 사고로 잃게되었습니다.


배우 겸 탤런트 박원숙은 1949년 1월19일생으로 올해 나이 71세입니다.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어보이죠. 고향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박원숙 아버지가 유명한 1세대 만화가 박광현(1928~1978)입니다.

학력은 숭의여자고등학교를 나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중퇴했는데 이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박원숙 종교 - 여호와의 증인



1970년 MBC 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박원숙은 그해 '화려한계절' '수사반장' 등에서 단역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하여 수많은 드라마에서 연기내공을 쌓아오다가, 1985년 '조선왕조 오백년(풍란)', '남자의 계절' 등에서 인지도를 쌓았으며, '한지붕 세가족(순돌이 엄마 역)', '토지' 등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들에 대한 팔불출 속성이 극에 달해 타락해버린 듯한 못된 시어머니 역을 많이 맡아왔는데, 가히 이 방면에 특화된 배우. 이런 연기를 너무 잘하다 보니 욕하다가도 감탄하게 만듭니다. 특히 드라마 '겨울새(2007년)'와 '백년의 유산(2013년)'에서 보여준 연기는 그해 대상감이었고 실제 2013년 MBC 연기대상의 유력한 대상 후보에 오르면서 연기 인생 43년 만의 첫 대상의 꿈을 이룰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 공로상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탁월한 연기력으로 인정받으며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연기자 박원숙이지만 안타깝게도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가 않았는데요.

박원숙은 한 남자와 두번의 결혼과 이혼, 세번째 남편과도 결국 이혼으로 끝나게 됩니다.





박원숙 첫남편 서모씨는 박원숙이 대학교 1학년때 만난 첫 남자였는데, 당시 중앙대학교에 다니던 박원숙은 남편과 대학 살롱 드라마 모임체인 YMCA '탈'에서 처음 만나게 됩니다.

당시 전남편은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재학중이었고, 이 동아리에서 연출을 공부하는 중이었으며, 나이는 박원숙보다 2살 연상이었습니다.


첫만남 이후 만남을 이어오던 두 사람은 만난지 두세달쯤 되서 우연히 통행금지에 걸려 박원숙은 신랑될 사람과 함께 여관에 묵게 되는데, 여기서 첫관계를 하고 이것이 임신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임신을 한 박원순은 대학을 중퇴해야만 했습니다.

박원숙 - "사회 분위기가 요새는 미혼모도 있는데 그땐 임신을 하고 그랬으니 죽으려고 했다. 처녀가 임신을 했으니까... 그래서 산으로 가서 살자는 생각도 했다. 할머니가 나랑 뛰어내려 죽자고 하셨다."



결국 박원숙은 첫남자였던 서모씨와 혼전임신으로 만난지 7개월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혼전임신으로 대학을 중퇴한 뒤에도 박원숙은 연기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는데요. 임신 7개월 만삭의 몸으로 MBC 탤런트 공채 1기 시험에 응시하게 됩니다.

박원숙 -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데 연극하고 동아리 활동하다가 결혼하게 됐다. MBC 공채 탤런트 공고를 봤는데 20세 이상이라는 것만 있지 혼인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열의를 가지고 시험 보러 갔다."

하지만 만삭의 박원숙에게 심사위원은 이런 핀잔만 줍니다.

"집에 가서 애나 낳으라."

결국 박원숙은 출산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낳은 자식이 박원숙의 유일한 아들인 서범구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박원숙은 다시 MBC 공채 탤런트에 응시했고, 당당하게 합격하게 됩니다.

박원숙 - "그때 내 별명이 3천대1이었다(당시의 경쟁률이 3천대 1이었음). 또 배우 임현식이 MBC 공채 탤런트 1기 선배다."



이렇게 박원숙은 결혼 후 연기 생활을 시작했고, 남편은 공군 장교로 군대를 제대한 후에 개인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액세서리, 운동복 제조, 실내장식 용품 등 남편이 하는 사업마다 실패를 하면서 박원숙이 버는 돈을 탕진하고 맙니다. 결국 말리다가 지친 박원숙은 1981년 합의 이혼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3년동안 박원숙은 솔로 생활을 하는데, 동료 탤런트 L씨가 혼자 사는 박원숙을 쉽게 보고 일방적으로 대시합니다. 이에 고민하던 박원숙은 전남편에게 도움을 청했고, 결국 3년만에 전남편과 다시 재결합(재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남편에게는 이미 다른 여자가 있었는데요..또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박원숙은 재혼 후 불과 6개월만에 다시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들 서범구 역시 자신의 손으로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계모 밑에서는 키울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아들과 함께 살던 박원숙은 1989년 아르헨티나 교포 사업가 김모씨와 세번째 결혼식을 올립니다. (※당시 남편은 전처 사이에 딸이 1명 있었다고 하네요. 따라서 이때의 박원숙 가정은 1남 1녀였습니다.) 

하지만 재혼한 남편 역시 사업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결국 1995년 세번째 이혼을 하게 되는데, 이혼 후에도 남편의 사기때문에 큰 괴로움을 겪습니다.

박원숙 - "1993년 12월 당시 남편 김씨의 사업체가 부도를 내 20여년 동안 연예활동을 하면서 모은 나의 전재산을 날렸고 지금까지 드라마 출연료를 압류당하고 있다."

결국 박원숙은 전남편의 빚을 대신 물어주기 위하여 큰 빚을 지고 말았죠. 하지만 박원숙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요...





첫남편과 얻었던 박원숙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들 서범구가 2003년 11월 3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당시 박원숙 아들 서범구 직업은 TV 외주제작사 `Mcity 프로덕션'의 피디(PD)로 일해왔는데, 점심 시간에 식사를 하러 회사 밖으로 나왔다가, 화물차 운전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경사길에서 미끄러진 화물차에 치여 목숨을 잃게 됩니다.

박원숙 - "사람들은 내가 아들 사망 원인을 아는 줄 알지만 사실 모른다. 일부러 듣지 않았다. 아들의 사망 당시 의사가 다친 부위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귀를 막았다. 지금까지 아들의 사고 이유를 모른다."

현실부정을 하는 박원숙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박원숙이 얼마나 아들의 사망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네요. 세번의 결혼 실패 이후에 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박원숙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박원숙 아들은 이미 결혼을 한 상태 였고, 아내(박원숙 며느리)와 딸을 1명 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가 재혼을 하게 되면서 박원숙과 손녀와의 관계는 끊어지고 말게 됩니다.

 

박원숙 - "아직도 손녀에게 연락이 올까봐 8년 전 전화번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며느리가 재혼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가정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손녀와 이별했다. 손녀가 마음이 편해지고 조금 더 커서 할머니한테 전화 해볼까라는 생각이 된다."

며느리의 새 가정을 지켜주고자 하는 박원숙의 마음 씀씀이가 엿보입니다.

박원숙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유일한 혈육인 손녀와의 관계마저 끊어지자 가면성 우울증을 겪게 됐다고 후에 고백했습니다.


현재 박원숙은 10여년 전에 남해로 내려와 살고 있는데요.

기구하고 가슴아픈 인생사를 겪은 그녀에게 자연이 주는 힐링이 삶의 의지가 되는 듯 합니다.

박원숙 - “혼자인 삶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너무 좋다”


원래 박원숙이 남해에서 살던 집은 현재는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박원숙 카페 주소는 경남 남해군 삼동면 예술길 62. 지번동천리 2095

매일 09:00 - 18:30 영업한다고 합니다.


'모던패밀리'에서 공개된 박원숙 집은, 박원숙 카페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더군요.

박원숙 남해 집이 방송에서 공개되었을 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여서,

아예 원래 살던집을 카페로 개조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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