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전원주 재혼 아들 고재규 직업 며느리 김해현 남편 사별 치매


이번주 '인생다큐-마이웨이' 주인공은 원로 배우 전원주 입니다.

전원주는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개성부에서 부잣집 딸로 태어나, 당시의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고학력인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엘리트입니다. 오랜동안 전원주가 tv방송에서 많이 맡아왔던 가난한 집안 억척스러운 어머니 역할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죠.


전원주는 숙대 졸업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작은 키로 칠판에 글 쓰기기 너무 힘들어 배우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방송에서 웃자고 한 얘기겠지만 교사샐황중에 스트레스를 꽤 받은거 같습니다. 



실제 전원주가 직접 밝히기를,

학교에서 전원주가 아이들을 단속하고 있었는데, 훈육주임이 여학생들을 나란히 세워놓고 차례로 뺨을 때리다가, 키가 작은 전원주를 학생으로 알고 뺨을 후려치는 바람에 기절을 해버렸다고... 이 사건으로 전원주는 사표를 내고 원래 뜻을 두고 있던 배우를 할 결심을 굳히게 됐다고 하네요.



그런데 방송계에서 전원주가 너무 못 생겨서 받아주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전원주는 1963년 동아방송 공채1기  성우로 먼저 데뷔하게 됩니다. 후에 연기를 하면서도, 작은 키와 외모때문에 중요한 배역을 주지 않죠. 주로 맡은 것이 식모 역할이나 시장 상인 역할. 드라마 주인공의 어머니 역할을 한 적도 있지만, 역시나 주인공 집안이 가난하다는 설정에 전원주는 주인공 어머니임에도 직업이 또 식모이거나 하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전원주는 이런 상황이 매우 불만스럽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거 같습니다. 연기생활 내내 한이 될 정도였다네요.



맨날 식모 역할만 도맡아 하는 바람에 사모님 혹은 마님들이 입는 비단 치마를 입고 연기하는 것이 꿈이라고 안면있는 PD들에게 하소연을 자주했고, 이에 어느날 한 PD에게서 출연 제안이 오면서 비단 치마를 입는 배역이라고 하여 신나서 출연하러 갔더니 무당 배역이었다고...

전원주 -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게 자존심이 깎이는 거, 어떤 인간 이하 대접받을 때가 죽음하고 똑같아요"

전원주 - "이런 거에 내가 악화가 돼 있으니까 가정은 저만큼 미뤄놓고 나만 한번 떠보려고.. 제가 여기(연예계에) 들어 왔으니까 얼굴을 한번 알려야겠다. 이런 게 아주 병적이에요" [2015년 EBS '리얼극장' 인터뷰]




1990년대 중후반 개그우먼 김미화의 추천으로 '코미디세상만사'의 '사미인곡'코너에서 부잣집 푼수 아줌마 역으로 출연하면서 호탕한 웃음소리와 '다음에 또 모이면 떼레뽕(텔레폰) 때려줘', '된장 뜨러 간다 된장 뜨러 가' 등의 유행어를 탄생시켜 재미있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게 되며 데뷔 이래 처음으로 이슈 연예인이 되어, 점점 더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전원주는 국제전화 상품광고에 출연하면서 일약 CF 광고 스타로 폭풍같은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전원주 - "진짜 내 운명을 바꾼거지. CF하나로 그렇게 큰 인기를 얻게 될 줄 몰랐어"

전원주 - "'전원주 떴다! 이효리보다 떳다!' 이러면서 당시 연예인 인기순위 1위에 오른 적이 있어요"


단 한편의 광고로 35년 무명 배우에서 일약 CF스타로 등극! 광고효과 최진실 최지우 등 능가. CF여왕!

전원주 역전의 드라마 인생 '나 포기 안하길 잘했지?'

처음 이 광고 촬영 개런티가 1,000만 원이었는데, 이 광고로 유명세를 타고서 개런티가 2억 원대로 20배 이상 훌쩍 올라갔다고 합니다.



광고로 인지도가 올라간 전원주는 각종 예능 프로에 출연하며 특유의 웃음소리를 선보였는데 원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 보여줬던 것. 이후에도 이 호쾌한 웃음소리가 전원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1997년 외환 위기로 국민들이 힘겨워했었는데, 서민적 느낌의 아줌마였던 전원주의 호탕한 웃음소리는 그녀가 호감 연예인이 되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원로배우 전원주 프로필을 간략하게 보자면,

전원주 본명이구요. 생년월일 1939년9월20일로 올해 나이 81세. 고향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개성부로 실향민입니다.

이름 때문에 강원도 원주시 홍보대사를 한 적있는데, 그 덕에 원주가 고향이라고 잘못 알려진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전원주 키 150cm/51kg. 혈액형 AB형, 학력은, 덕성여자고등학교.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종교는 불교입니다.



실향민 출신이었던 전원주는 여렸을 때 하도 못먹고 고생을 너무 많이해서 키도 작고 몸도 왜소했다고 합니다.

전원주는 2번 결혼을 하고 2번 모두 남편을 사별하는 가족사가 있는데요. 세간에 알려진 전원주 남편 임진호가 사실은  재혼남이었다는 것도 최근에나 전원주가 밝힌 바 있었죠.


전원주는 친아들 고재규가 첫돌때 전남편과 사별을 합니다. 당시 전원주 나이는 29세.

전원주 - "(첫 남편이) 죽고 나니까 20대예요. 스물아홉에 내가 사별했어요. 남자가 제일 생각나고 그리울 때 아니에요. 그러니까 (재혼하면서) 자식 생각을 미리 못하게 되더라구요"



전원주 아들 고재규 - "어렸을 때 좀 이상하게 생각했던 게 (어머니가) 어떤 남자 분을 만나셨는데, 갑지기 어머님이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시더라구요. 당시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기도 힘들었던 상황이 '왜 아버님이랑 너랑 성이 다르냐?'

새 아버지와 성이 달라 힘들었던 아들 고재규에게 어머니 전원주도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전원주 - "(둘째) 아들한테도 내가 큰 정이 안 간 것 같아요. 그 애만 이렇게 안을 수도 없고 또 안아지지도 않고 이러니까...애 데리고 (재혼) 하는게 아니다. 나도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전원주 친아들 고재규는 둘째 아들이고, 첫째 아들이 재혼남편 임진호가 데려온 의붓아들입니다.

고재규는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초등학생 무렵 전원주가 데려와 키웠다고 합니다.



첫남편과 사별한 전원주에게 친어머니는 수절을 하며 살라고 재혼을 극구 말렸다고 합니다.

개성상인이었던 전원주 친정 어머니는 검소함으로 남부럽지 않은 부를 이룬뒤 출가한 자식까지 챙기러 쫓아다녔던 억센 모성을 가진 분이었다는데요.




전원주 - " 우리 친정어머니가 그래도 참 배우지 못한 여자인데 앞을 내다보셨어요. 이 사람(재혼남편)을 처음 보고 나더니 '생활력이 없어 보인다' '가정적이 아다. 너 살면 후회한다' 이러는데 나는 뭐...내가 좋으니까 아무것도 안 보이는거에요"

어머니가 반대하는 재혼을 하는 바람에 맨몸으로 쫓겨난 전원주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늘 안간힘을 써야 했습니다.



전원주 - '(재혼한 남편은) 이 사람이 야성적이고 사나이답고 우람하고 겨안으면 뼈가 으스러지게 안고 이런 거에 내가 빠져서 '너무 눈이 어두웠구나' 나중엔 후회했죠"

전원주 - "(남편이) 애들 등록금을 한번 걱정을 하나. 으레 다 내 책임이에요. 집에 뭐가 떨어지는지 아나. 뭐가 필요한 걸 아나. 몰라요. 아무 것도 몰라요."


참고로 전원주 첫째 아들(의붓 아들) 직업은 사업가이고 태국에서 오랜동안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원주 둘째 아들 직업은 보습학원 원장이자 강사입니다. 둘째 며느리 김해현도 보습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첫 남편과 1년만에 사별한 전원주는, 자신처럼 아내와 사별후 아들 하나를 키우던 남편 임진호와 1969년 재혼을 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친구 아기 돌잔치때 처음 만나고 서로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임진호 - "저런 여자를 데리고 살면 평생 고생은 안 하겠다고 생각했다. 시골 처녀 같은 모습이 순수해서 좋았다. 하지만 결혼해서 살고보니 여자 호랑이가 따로 없더라."

전원주 - "남편의 뛰어난 언변에 마음이 끌렸다. 머리에 든 게 많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안 사연이지만 책에 다 써있는 내용을 줄줄 읊은 것이었다."


게다가 두사람은 뜨거운 연애로 산속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파출소로 끌려가기도 합니다.

전원주 - "뜨거운(?) 애정 행각 중 신발이 없어진줄도 몰랐다. (옆에 있던 건달들이) 야! 정신들 차려 라며 신발을 던져주기도 했다.(그리고 산속에서 데이트를 하다 걸려) 파출소에도 한번 끌려갔다 왔다."



전원주는 재혼 후 6번의 낙태를 감수한 독한 모성애로 새롭게 맞은 가족을 지켜냈습니다.

전원주 - "당시에 낙태수술을 하고 두 달이나 석 달 뒤에 또 낙태수술을 하니까 재가 깨어나질 못하는거에요. (나중에) 눈을 떴을 때 보니 어머니가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하고 계시더라고요."

전원주 - "'엄마' 불렀더니 어머니가 '어미 속 좀 그만 썩여라, '내 가슴이 (너 때문에) 녹아내린다' 그러시더라고요"

이처럼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길 정도로 낙태를 했던 이유는, 혹여 또 다른 자녀로 인해 생길지 모르는 가정불화를 막고자.. 제 몸 상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전원주 - "(새 자녀를 낳으면 가정의) 질서가 없어지잖아요. 내 아이, 당신 아이가 있는데 우리 아이까지 낳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까지 만들면 안되겠다. 그거 하나는 분명히 지켰어요. 그 선택이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거 같아요"



전원주가 둘째 아들, 즉 친아들 결혼전에, 그 결혼을 반대했었다고 합니다. 전원주가 점찍어둔 며느리는 바로 탤런트 윤유선이었다고... 하지만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둘째 아들의 결혼을 허락하게 되는데요.




전원주 - "(며느리에게) 아들은 내 전체 기둥이고 내 생명이고 내 마음의 전체였다. 신랑이지만 멋있지 않느냐. 키 크지 인물 좋지 마음 좋지 공부도 잘했지 인간성도 좋지 그런 아이를 너한테 안겨준 거다. 안겨주고 싶어서 안겨준 건 아니고 벌써 둘이 좋아서 연애한 후에 배 속에 아기까지 만들어 왔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허락 한 거다. 그러면 그때부터 너희가 잘해야지. 뒤에서 조종해서 남편한테 시키지 마라. 네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

즉 속도위반으로 혼전 임신을 했기에, 전원주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허락했다는 것.



전원주는 둘째 며느리 김해현과 방송출연을 종종하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리얼한 고부관계. 시월드를 보여준 바 있는데요. 독한 시어머니 전원주 밑에서 빡세게 시집살이하는 순둥이 며느리 김해현은 어느덧 방송 짬밥을 먹어가면서 이제는 할말 다하는 며느리 캐릭터로 바뀌어가며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또한 성격상 며느리에게 살갑게 대하진 못해도 그런 며느리 모습이 싫지 않은 시어머니 전원주.


한때 방송에서 보여진 독한 시어머니의 꼬장스런 모습에 전국의 며느리 시청자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반면 전국 시어머니 시청자들에겐 속시원한 대변인 역할을 해왔던 전원주이지만, 사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며느리를 사랑하는 평범한 시어머니.

전원주 - "나는 (며느리에게) 달콤한 소리를 할 줄 몰라요, 바로 되기 위해서는 쓴소리도 많이 해줘야 하고... 내 핏줄이고 내 가족이니까, 내가 가족을 책임질 의무도 있고 돌볼 의무도 있다 보니 (엄하게 하죠)"

전원주 - "그래도 자식들에게 존경받는 어머니가 되고 싶은 게 제 꿈이에요"



전원주에게 있어 손자와 손녀들은 자랑거리인데요. 전원주의 큰 며느리 김종순의 딸, 즉 큰 손녀딸은 서울대학생입니다.

전원주 엄친딸 손녀는 2012년 방송에 소개되면서 귀여운 눈웃음과 단정한 외모로 수수한 차림에도 우월한 유전자임을 뽐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날 전원주 손녀딸은 "우리 할머니 최고!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할머니"라며 "이렇게 용돈까지 주시는 할머니는 없을거다. 푸짐하게 많이 주신다"고 말했구요. 이에 전원주는 "여우다. 눈물 나려고 한다"며 감동했습니다.

참고로, 전원주의 큰 손자와 큰 손녀는 서울대, 작은 손자는 고려대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전원주 둘째 며느리 김해현이 방송에서 시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김해현 - "시어머니가 놀라실까봐 조금 두렵다. 아이들 사교육비가 제일 많이 들었을 때는 큰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고 작은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방학 때였는데 당시 한 달 600만 원 정도 들었다."

이렇게 한달에 600만원(당시에 제일 많이 들었던 방학때)이나 했던 사교육비의 대부분이 전원주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둘째 아들의 학원 운영이나, 큰 아들의 태국에서의 사업 자금 등도 대부분이 전원주의 돈으로 이룩한 겁니다.

이렇듯 가족의 경제력을 책임지는 전원주이기 때문에 자녀와 며느리들에게 큰소리 칠 수 있고 당당한게 아닐까 하네요.



지난 2월 '아침마당'에 출연한 전원주가 치매 환자로 오해받은 사연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요.

이날 전원주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우울증 비슷한게 왔다. 기억력도 떨어지고 사람도 빨리 못 알아봤다. 혼자 우울할 때 TV에 나와서 '건망증이 왔는지 사람도 못 알아보고 치매 증상이 오는 거 아닌가 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후 '전원주는 치매다'라는 이야기가 떠돌더라. 그래서 일도 다 잘렸다"며 "나 멀쩡하니까 일 좀 많이 달라"며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전원주 남편 임진호는 2013년 3월 10년의 투병생활 끝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남편이 죽기 전에 했던 말이 "진짜 내가 죽기 전 진정한 소원인데...(사람들이) 전원주 짠순이라고 하는거 진짜 듣기 싫다. '이 짠순이가 좋은 일을 하려고 짠순이로 지냈구나'라는 얘기 들을 수 있게 (어려운 사람을 돕는) 좋은 일에는 돈 아끼지 말고 자선사업, 자선 기부하라는게 그 사람 마지막 소원이었어요"

사랑하는 남편의 마지막 유언은 꼭 지케겠다고 다짐하는 전원주는 자선사업과 기부를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