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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신영희 명창 나이 전남편 이혼 딸 사위 손녀 가족 


국악인 신영희 명창이 티비조선 <인생다큐-마이웨이>에 출연하여 인생사를 공개한다고 합니다.

80년대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1번지'의 코너, ‘쓰리랑부부’에서 개그맨 김한국, 김미화와 호흡을 맞춰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대중들에게 친숙한 대한민국 대표 명창 신영희.


명창 신영희는 1942년3월22일생으로 올해 나이 78세.

고향은 전라남도 진도군 출생입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동국대 대학원에서 무대예술 과정을 수료했고, 현재 한국 판소리보존회 이사와 원광대학교 국악학과 교수 등을 맡고 있습니다.



신영희 아버지 신치선은 담양 출신 판소리 명인으로, 진도에서 판소리를 가르쳤던 판소리 선생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요.

신영희가 11살 무렵, 아버지 신치선에게 소리를 배우던 젊은 소리꾼이 한 대목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꺽꺽 거릴 때, 그녀가 대뜸 방문을 열고 들어가 ‘들은 풍월’로 흥부 매품 팔러 가는 대목을 뽑아 넘겼다고 합니다.



당시 아버지 신치선은 신영희의 소질을 봤지만, '여자 소리꾼은 기생 취급 하던 시절'이었고, 소리하는 여자가 많지 않았던 때라 신영희가 판소리 하는것을 못마땅해하고 많이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명창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어머니의 설득으로 소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영희는 과거 고된 연습으로 인해 목소리를 1년간 잃었던 사연을 공개했는데요.

신영희 - “어렸을 때 소리에 입문한 김에 소리만 계속하자는 마음에 연습만 했다. 그랬더니 몸에 오한이 들었다. 열네 살 때 1년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신영희 - “어혈에 좋다기에 인분을 먹었다. 헝겊에 싸서 물에 담가두면 아침에 정종색으로 변하는데, 그걸 많이 먹었다” 

'인분'이라하면, 사람의 변(똥;;) 말하는거 아니던가요? 허....

이처럼 신영희는 최고의 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음을 고백했습니다.




신영희는 16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병환으로 몸져 누우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판소리를 하며 오빠와 동생을 뒷바라지했다고 하는데요. 



잔칫집, 소리판을 전전해 심봉사 젖동냥하듯 큰오빠 대학까지 공부시키면서도 김상룡, 강도근, 최일환, 박몽술, 김준섭씨 등 당대의 소리꾼은 모두 찾아 다니며 소리 내공을 쌓았고, 장월중선 선생님으로부터 무용, 연기, 창극을 사사했습니다.

당시 신영희는 남자 스승님께 배운 과정 덕분에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창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20대 중반까지 배운 뒤 서울에 올라와 만정 김소희 명창 문하에서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전바탕을 배웠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하였으며, 1977년에 남원 춘향제 명창부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 후 1992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되었고, 2013년에 김소희 명창의 뒤를 이어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한국 판소리보존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2005년 문화훈장 등을 받았습니다.



수십 년간 국악인생을 살았지만 신영희 명창은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1번지'의 인기 코너 ‘쓰리랑부부’에 출연하며 인생이 바뀌게 되었는데요. 파워풀한 판소리와 넘치는 끼로 인기를 얻게 된 것. 

국악계에서는 국악의 이미지를 떨어뜨린다며 출연을 반대했지만 신영희는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방법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신영희 - "쓰리랑 부부' PD가 날 보고 먼저 제의했다. 국안인이 많지만 내가 연극도 하고 하니 저 양반이 들어와 명창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생각했다더라"



신영희 - "제의만 받고 1년간 지켜보다 내가 먼저 하겠다고 연락했다. 그러다 보니 4년 동안 출연했다"

신영희 - "쓰리랑 부부'는 대단한 프로그램이었다. 다들 길 가다가 식당에 들어가 볼 정도였다. 처음에는 대본을 줬는데 커닝하니까 부자연스럽더라.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애드리브로 했다"

신영희 - "김미화가 사실 거기에서만 기가 세지 마음은 여리다. 기가 센 것은 사실상 나였다"


1980년대 후반 "음메 기살어, 음메 기죽어"는 최고의 유행어였을 정도로 '쓰리랑부부'는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고, 개그에 신영희의 맛깔스런 소리가 곁들여지면서 국악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게 됩니다.



신영희 전남편 사별, 이혼, 신영희 딸


대한민국 대표 소리꾼으로 탄탄대로를 걸은 신영희도 결혼 실패로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는데요. 22살에 첫 결혼을 했지만 그녀의 활발한 활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가부장적인 남편과 딸 하나를 낳고 헤어졌고, 이후 만난 두 번째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그녀의 이름으로 사기를 쳐 재혼 14년 만에 다시 이혼을 택했습니다.



신영희 - “첫 남편이랑은 일찍 결혼했는데, 내가 소리를 한다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을 못 봤다. 먼저 그 사람이 떠났다”

이렇게 신영희는 첫 번째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50세 이후 재혼했는데요.

신영희 - "전 남편은 후배 국악인의 소개로 만났다. 오랫동안 혼자 산 내게 전 남편은 적극적이었다. 단순한 성격 탓에 전 남편의 모든 행동을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거짓말을 많이 하고, 성격이 까칠하더라"



신영희 - “남편과 성격 차이는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다 남편이 내 명의의 900평 별장을 자기 이름으로 바꿔 놓은 사실을 알게 됐다. 황당해서 내 명의로 돌려놓지 않으면 지명수배를 내린다고 했더니 사흘만에 다시 원상태로 해놨더라. 그리고 한참 있다가 이혼하자고 자기가 그러더라"


신영희 - "이후엔 바람까지 피고 결국 1994년에 결혼해서 2005년에 이혼했다. 알고 보니 전 남편에게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이혼 뒤 알게 됐다. 많은 사람에게 외도 모습이 목격됐는데, 가정불화가 날까 봐 나한테 이야기를 안 해준 것이었다. 이혼한 다음 해엔 재산 분할 청구 소송까지 걸더라. 정말 별걸 다 했다"


신영희 - "이혼한 후에는 돈도 떨어지고 젊은 여자도 떠나니까 병이 나서 고생고생하다 저 세상으로 갔다고 하더라. 전엔 화가 좀 났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스트레스가 가장 나쁘니 욕심도 호기심도 다 버렸다. 다 잊었고 내려놨다”



신영희 명창은 과거 KBS 2TV '여유만만'에 출연해 "나는 팥쥐 엄마였다"면서 가족에 대해 말문을 열었는데요.


신영희 - "딸에게 정말 잘 못해줬다. 지금도 미안하다. 죽을 때까지 미안할 것 같다"

신영희 - "어렸을 때 의자에 묶어놓고 때린 게 아직도 미안하다. 서울에 와서 살면서 뒷바라지를 못해준 것도 그렇고 고등학교 졸업식에 못 간 것도 미안하다"
신영희 - "일 때문에 목포로 올라오는 바람에 딸을 양어머니 양아버지께 3개월간 맡겨놨다. 데리러 가니 자식은 역시 엄마 손이 필요하더라. 양어머니가 잘해줬는데도 딸 머리에 이가 생겼더라"



신영희 - "서울로 올라온 다음에도 딸에게 잘 해주지 못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실내화 한 번을 세탁해준 적 없고, 도시락과 준비물을 챙겨준 적도 없다. 6살 때부터 연탄불 갈기, 빨래, 콩나물 다듬기 등을 시켰다. 그러다 보니 딸이 살림을 잘한다"


잘 못해줘서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신영희 딸 김보배씨는 결혼 후 분가해서 잘살고 있는거 같구요. 신영희 사위는 이병훈이라는 사람이라는데, 유명한 가수였다는 말도 있고,, 자세한 정보는 찾아봐도 나오질 않네요. 




신영희는 현재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손자와 손녀 등과 함께 살고 있는데요다. 이날 '마이웨이' 방송에서 40대 중반에 손녀를 얻었다며 미모의 손녀 이정주를 소개했습니다.


신영희 손녀 이정주는 “할머니가 젊으셨을 때 제가 태어났다”며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집에 있을 때면 할머니 스케줄을 따라다녔다. 그게 할머니가 절 돌봐주시는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신영희 손녀 이정주는 지난 2002년 ‘국악인 신영희 소리인생 50주년’ 무대에 어머니 김보배와 함께 오르기로 했습니다. 

이정주씨는 어릴 적 신영희로부터 판소리를 배웠고, 그의 어머니, 즉 신영희 딸 김보배는 거문고를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팔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공연과 후배 양성으로 쉴 틈 없다는 소리인생 68년차 국악인 신영희의 인생 이야기는 이번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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